4.23.2013

식사냐, 사육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윤후가 인기였다. 나도 좋아한다. 
'무언가를 먹고있다, 곧 먹을 것이다' 라는 사실에 눈이 빛나는 모습이 남같지 않아서다. 나도 뚱뚱한 게 아니라 통통한 거라고 위로하며.

윤후의 '초등학교 급식 먹방(방송도 아닌데 왜 먹방이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진'이 한참 온라인에 떠돌았을 때, 해당 사립초등학교에 대해 입학조건이니, 학비, 교복 등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 붙었다. 
명문이라느니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만 다닌다느니.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명문사학이라는 곳에서 조차 급식식기는 금속자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남다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것 같은 이런 교육기관에서도 식문화에 대한 남다른 고찰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담겼든지 잘 먹고 무럭무럭 잘 자라서 포동포동 살이 오르기만 하면 됐지' 정도에 머무르는, 
한국인이 식사를 대하는 인식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리가 식사라는 행위가 가져오는 즐거움으로 이어질 지, 사육을 위한 먹이가 될 것인지는 식기가 미치는 영향도 크다.
생각해보라. 
금속 식기 사용과 어울리는 곳을 떠올려보면, (안타깝지만) 강제수용소, 군대, 교도소 등이 아닌가. 
(이들이 음식을 즐길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비유가 우습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수준과 아이들의 성장 문화를 비교해보자는 취지에서.)

우리는 요리가 담긴 식기에 따라 음식을 취식하는 방법과 속도, 마음가짐을 달리하기도 한다. 
요리가 문화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식기도 문화적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로열 코펜하겐쓰는 귀족학교가 되란 것도 아니다.
그런 건 비싼 식기 쓰며 '서민학교, 부자학교'식 구분짓기밖에 안된다.
적당한 가격의 도기로 메뉴에 맞는 식기에 각각 담아 음식을 먹는 문화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사립학교의 응당한 취지와도 맞지 않을까?

(+ 애들 다칠까봐, 단체배식이 용이하도록 금속, 플라스틱 급식판을 쓴다고 하지만, 영리한 아이들은 금속, 플라스틱 급식판이니까 덜 조심해도 되고 좀 엎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깨지는 도기도 써봐야 식기는 이렇게 다뤄야 하는구나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 정도면 영유아도 아니고, 그 정도 '조심해야 하는구나'는 인식할 수 있다. 5살짜리 별로 안똑똑한 우리 조카도 안다. 자기 몫의 계란을 아빠가 먹을까봐 그릇을 아빠로부터 멀리 치우는 윤후정도의 영리함이면 다 배울 수 있을거다.)



요네하라 마리의 <문화편력기> 중 '요리와 먹이의 경계선'을 읽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