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2011

잡지 에디터 지망생들에게



잡지 에디터가 되고싶다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의 메일을 받았다.

졸업을 앞두고 잡지사에 들어가기 위해
열정 하나로 준비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 학생에게 솔직해져야한다. 에디터가 가져야 할 소양만 알려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잡지산업이 직면한 지금의 현실을 함께 뱉었다.
그 학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업계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모른 체 하기엔 나는 너무 많이 알고있다.
우선 블로그에 이 글을 올려본다.

나는 잡지계에 오래 머무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인쇄매체, 특히 잡지라는 매체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한글을 아낀다. 
이 땅에서 비전을 보지 못하고 바다 건너 이민가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다 넘어가고나면 한글은 누가쓰나.'다.
나는 국내외 잡지를 고루 구독한다.
국내지와 해외지, 그 질의 차이를 종종 느낀다.
그리고 국내 구독자와 해외 구독자가 잡지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나라 잡지산업의 발전을 기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이 악의 축인가?


대규모 자본의 지속적인 투자를 받지 않는 한 우리나라 잡지사는 살아남지 못한다.
자체적인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구독료로는 잡지사 구성원들의 한 달치 밥값도 치르지 못한다.
한글을 사용하는 인구 수가 적다는 이유,
콘텐츠에 값을 치르고 구입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문화를 가졌다는 이유로
구독자가 적을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은 이제 두말하면 입 아프다. 
광고료는 어떤가?
잡지가 표방하는 성격에 따라, 잡지 배후의 자본세력이 누구인가에 따라
광고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도 있고 광고시장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양질의 콘텐츠가 나올 리 없다.
글쓰는 데 무슨 돈이 필요하느냐고?
한 명의 에디터에게서 한 달에 뽑아낼 수 있는 창의력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24/7 이라는 시간의 제약 역시 그 한계를 만드는 요소기도 하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 물리적 한계를 잘 따져보고도 잡지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그 충분한 인원을 충원할 돈이 없다.
그럼 적은 인원이 밤을 새서라도 제 날짜에 책을 내야한다.
밤을 새서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잡지를 만드는 구성원이라면 다른 업종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지식을 많이 쌓아야한다.
누구보다 먼저 보고, 먼저 읽고, 먼저 듣는 것을 더 많이 해야한다.
세월에 묻혀 쌓인 먼지를 훅훅 불고 옛 학자들의 지식도 탐해야한다.
그 풍부한 앎 속에서 비옥한 한 줄이 탄생한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 중 한 분은 많이 보고, 많이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외부에 있는 지식과 경험을 쌓을 시간에 밤을 새서 원고를 써야한다.
한 달 동안 책 한 권을 제대로 못 읽는다. (물론 그 와중에 부지런하게 몇 권씩 읽는 에디터도 있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그러니 질 좋은 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사의 질이 떨어지니 미용실이나 카페에 구비된 잡지를 슬쩍 읽긴해도 구독해서 보는 사람은 드물다.
구독료가 줄어든다. 자립적인 수익구조를 내는 것은 점점 먼 얘기가 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잡지산업이 풀지 못하고 있는 악순환이다. 

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에디터 지망생들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악순환의 직접적 동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태도 변화가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본다.




에디터의 소양



이 글은 바로 코 앞에 닥친 취업을 해결하고자 하는 잡지사 에디터 지망생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본인이 가진 역량과 지식을 취업시장에 헐값에 파는 당신과 나의 과거에게 하는 이야기다.


에디터 지망생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에 대하여 쓴다.

다음에 언급한 소양을 처음부터 모두 갖추고 시작하는 에디터는 아주 드물다.
대개 시작하고 나서야 그 소양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고 그때서야 쌓는 편이다.
실무 경험을 하면서 필요에 의해 소양을 쌓아야겠다는 의무감을 갖는다.
하지만 실무 이전에 그 소양에 대한 소리, 소문을 듣는 것은 꽤 중요하다.
적어도 들어가서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다.
('빠르게'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국사람과 그들이 이끄는 산업의 특징을 함축한 이 핵심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상을 쫓는 수 밖에 없어 우선 쓴다.)

모든 종류의 잡지 에디터를 막론하고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에디터는 절대 글만 잘쓰면 되는 직업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망생들은 에디터를 단순히 칼럼 쓰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에디터는 글쟁이보다는 기획자에 가깝다. 
본인이 담당한 분량의 종이를 책임지는 총괄PD라고 이해하면 쉽다.
한 이슈를 만드는 한 달을 쪼개어 보자.
대부분의 에디터들이 글을 쓰는 기간은 마감을 앞둔 한 주가 고작이다.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글 쓰는 일이 아니어도 할 게 많아서다.
물론 예외적으로는 계획을 세워 수시로 기사를 작성하는 에디터도 있다.
나머지 3주는 잡지 페이지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일을 비롯해 섭외와 취재, 촬영을 진행을 한다.
어떤 내용을 채울지, 어떤 레이아웃으로 구성할 것인지 페이지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스케줄을 세운다. 
때로는 그 스케줄 사이를 비집고 갑작스레 생기는 예기치 못한 일마저 처리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직업을 기자라기보다는 에디터라고 통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취재처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엄연한 '기자'기도 하다. 
섭외력과 취재능력, 순발력과 사교성, 위트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외국어 능력이다.
해외로 취재를 갈 때 동시통역자가 따라 붙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혹여 통역자가 있더라도 현지 사람과 자유롭게 소통하면 할 수록 취재거리는 배로 늘어난다.
한국에서만 활동을 하는 에디터라도 각종 행사에 참석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제2외국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 한 마디 벙끗해야 할 일은 분명 생긴다.
그 순간을 기회로 만드느냐 눈웃음 3초로 흘려보내느냐는 당신의 선택이다.
하다 못해 영감을 얻기 위해 이런 저런 콘텐츠를 볼 때도
국내 콘텐츠만을 찾아보는 사람과 해외 콘텐츠도 찾아보는 사람의 차이는 기사에서 드러난다.

자기 캐릭터가 분명해야한다.
캐릭터가 분명하다는 것은 확고한 자기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는 것 이상을 말한다.
당신의 주체성을 표현해 줄 본인만의 양념이 바로 캐릭터다.
캐릭터가 분명한 에디터라면 제목과 전문, 첫 줄만 읽어도 누가 썼는지 감이 온다는 말이 나온다.
이 소양은 기초 글쓰기 연습을 한 후에 쌓아도 늦지 않다.
기본적으로 기사를 쓸 줄 모르는 상태에서 흉내만 내다가는 속 빈 강정이 되기 십상이다.
어렵지만, 정말로 어렵지만, 비문을 줄이고, 주술관계의 일치, 대구의 일치 등을 신경써서 글 쓰는 연습을 해야한다.
그 뒤에 본인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캐릭터가 비단 문장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한 소재의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견해가 근간을 이룬다.
평소에 사회 현안, 하다 못해 어제 본 영화에 대해서라도 자기 생각을 정리하자.
무조건 대세의 의견만을 옹호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견해를 만드는 연습을 해야한다. 
평소 좋아하던 평론가의 글에 때로는 상반되는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 
무조건 청개구리 놀이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저명한 인사더라도 그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글 잘 쓰는 것과 관련하여서는 나보다 글 경력이 훨씬 많은 선배들의 조언을 읽는 것이 백 번 낫다.
특히 한겨레의 온라인 오피니언 페이지인 훅Hook에 연재되는
'나는 어떻게 쓰는가' 칼럼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안수찬 한겨레 탐사보도팀장의 글을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단 한 줄도 버릴 것 없이 곱씹어 소화해야 할 글이다.
관련 링크를 함께 첨부한다.
http://hook.hani.co.kr/archives/25380



이제 이 글의 목적이었던 업계 이야기와 그런 업계에서 지망생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현재 스코어 0대 0, 불안한 연장전.



알다시피 잡지계의 재정은 그리 충분치 못하다.
대규모 자본을 가진 기업이 이미지를 위해 문화예술사업에 투자하여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모든 잡지산업의 수익구조는 굉장히 불안정한 편이다.
그나마 광고료를 받는 수입마저 불안정 하다. 
극단적인 경우 세 달 앞의 재정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각 위치에 있는 구성원들은 그 세 달 앞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 뼈 빠지게 일한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잡지사 초봉. 
대기업 초봉의 반이 채 안된다.
인턴? 어시스턴트?
그의 반에 반이 안된다.

'괜찮아요~. 전 돈 벌려고 일 하는 것 아니고, 에디터라는 직업이 좋아서 하는 거니까.'
라고 해도 할 말은 있다.
이 악순환이 계속되면 당신이 몸 담은 그 잡지가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정말 하루 아침에.


최근 이름 좀 들어봤다는 잡지(심지어 해외 라이선스지도)들이 매각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어디 마이너 취향을 가진 비주류 잡지사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이다.


그럼 잡지사들이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안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요즘 잡지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눈 돌린 곳이 바로 사보다.
사보는 기업 내 사람들이 읽는 사내보와 기업의 고객들이 읽는 사외보로 구분된다.
클라이언트 기업의 투자를 받아 발행하니 광고료보다는 큰 자본을 들여올 수 있다.
대기업들이 이 사보를 잡지사에 맡기는 일이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방송사로 치면 외주프로덕션에 의뢰하여 콘텐츠를 사는 개념이다.
대표적인 예로 오래 전부터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지를 담당해온 안그라픽스를 비롯하여
현대카드 VIP 매거진, <더블랙>의 편집과 디자인을 맡은 HEM 코리아와
삼성카드 VIP 매거진, <매거진 S>의 편집과 디자인을 맡은 솔루션 등이 있다.
하지만 이쪽으로 눈 돌린다고 이 악순환의 고리가 풀릴까?
지금 잠시 끼니는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문지도 제대로 안 읽는 사람들이 무료로 배포하는 잡지의 콘텐츠를 눈 여겨 볼까?
오래가지 못할 것 이다.(기내지는 매체가 노출되는 공간의 특성 상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아마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처럼 편집장 놀이를 하던 클라이언트가
'이제 편집장 놀이 시시해졌어. 그만할래. 돈 아까워.'라고 말할 때까지만 발행될 것이다. 

그때가서 또 다른 수익구조를 창출하면 된다고? 
그럼 대체 당신들이 쓰고 싶은 그 '글'이라는 건 대체 언제쯤이나 되어야 제대로 쓸 것인가.
이런 형태의 수익구조가 당장 당신의 밥값은 챙겨줄 지 모르지만 잡지산업이 가진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는 못한다. 
기업도 에디터도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아슬아슬한 연장전을 뛰어야 하는 셈이다.





골 넣는 수비수.




그러면 이런 업계환경에서 지망생인 당신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들여보내준다고 아무 잡지사나 가지말고 수익구조라도 건강한 잡지사를 골라 
그 한 놈만 죽어라 쫓아다녀라.
당신의 시간과 능력을 헐 값에 팔지 말아라. 제발!!

그럼 아무 경력도 인맥도 없는 힘 없는 학생이 
업계 사정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울부짖을 수 있다.


여기 '상대적으로는 건강한' 잡지사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주겠다.


대형서점에 가라.

가서, 

1. 잡지 앞부분을 펴라.


발행인, 편집장 그 외 에디터와 디자이너 등 모든 구성원의 이름이 실리는 페이지가 있다.
그 부분을 꼼꼼하게 체크하라.
잡지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와 디자이너 외 행정 업무를 맡아주는 팀이 세분화 되어있는지 확인하라.
이를테면 회계나 광고, 홍보업무를 맡는 곳 말이다.
팀 까지는 아니어도 각 분야의 담당자가 두 명 이상 씩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표자나 편집장 혹은 비서 한 명이 그런 일을 맡아서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문가가 아니면 회사를 건강하게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전문가가 관리를 맡아도 까딱하면 망하는 회사가 태반이다.
혹시 그런 업무 세분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주말에 만나기로 한 소개팅남, 소개팅녀의 뒤를 캐는 심정으로 
미친듯이 구글링이라도 해서 대표자의 경력을 확인하라. 
그 분야에 관련 경력이 있다면 그래도 아주 최악의 경영상태는 아닐 것이다.



2. 그 짓을 매 월 해라. 

페이지에 실린 고위층 구성원이 자주 바뀌거나 에디터가 자주 바뀐다면
꼭 재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회사에 건강하지 않은 요인이 분명히 있다는 증거다.
물론 에디터가 글 잘 못 써서 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글을 못 써도 그렇게 단번에 자르지는 않는다.
자질이 있어보여 뽑았으니 훈련을 시켜보거나,
없는 것 보다는 한 명이라도 있는 게 나으니 그 자리를 커버할 용병을 구한 뒤 자를 것이다.
그럴 시간도 없을만큼 인력이 자주 바뀐다면,
그렇다면 그건 에디터가 제 발로 나갔다는 거다. 
에디터는 이 직업이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3D직종임을 미리 알고도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아실현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 생각한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죽을 것 같다가도 잡지에 본인의 이름이 찍혀 나오면
아기를 순산한 듯한 뿌듯함과 벅찬 행복감, 그리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감에 젖는 것이 에디터다.
단순히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는 이유로 그만 둘 리 없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회사 내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온당치 않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증거다.


3. 페이지 수에 비해 에디터의 수가 너무 적지 않은지 체크하라.

재정이 건강하고 직원과 잡지의 질을 생각 할 만큼의 여유가 있는 곳이라면
한 명의 에디터가 한 달에 얼만큼의 원고를 뽑아낼 수 있는지
창의력의 물리적 한계에 대해 분명히 고려하고 충분한 인원을 채용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필요한 만큼의 직원을 수용할만큼의 재정이 충분치 않다는 거다. 
즉 적은 인원의 에디터가 (곧 채용 될 당신이) 두 명 혹은 세 명이 해야 할 업무량을 소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화를 못한다면? 회사에선 그것을 당신의 능력부족으로 책임전가 할 것이다.
당신은 기가 죽을 것이고, 회사는 당신의 연봉을 올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거리를 얻는다.
체크해 봤는데 원고량이 적당하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그 잡지사에서 발행하는 또 다른 잡지가 없는지 체크하라.
발견한 다른 잡지에 같은 에디터의 이름이 있는가?
당신이 맡아야 할 업무가 두 배가 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거라 믿는다.
뭐 그리 대단히 부도덕적인 것도 대단히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다.
잡지계에서는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특정 잡지사 이미지를 위해 어느 곳인지 여기에 밝히지는 않겠다. 
서점에서 한 시간만 투자하면 손쉽게 알아낼 수 있다.



4. 편집부에서 직접 기획하고 취재하는 기사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라.

현장취재의 기회를 가늠할 수 있는 직접적인 좌표다.
해외 번역기사나 외부 원고청탁 기사와 편집부 내 에디터가 직접 쓴 기사의 비율을 확인해보라.
더불어 기사에 실린 사진도 확인하라.
포토그래퍼의 이름 대신 OOO 사진 제공, 자료 제공이라고 써놓았다면 
그 기사는 현장취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보도자료를 받고 쓴 기사일 확률이 굉장히 크다.
보도자료를 기초로 기사를 쓰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기사의 특징에 따라서는 오히려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게 잡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본인이 직접 취재를 나가고 기획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된다.
사무실에서 메일쓰고, 전화통 붙잡고, 자료받아 쓰는 게 한 달 내내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자아실현 하겠다고 박봉에도 불구하고 잡지사에 들어온 사람이
돈이 돈을 만드는 페이지로 가득한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인지부조화가 아닌가?
'전 자아실현 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라서요.' 라고 말한다면 
글 쓰지말고 차라리 30대 대기업 리스트 찾아다가 인적성 시험을 보거나 
하다못해 중소기업이라도 가서 돈을 벌어라.


5. 해외 라이선스지를 맹신하지 말아라.


해외 라이선스지는 표지도 그렇고, 레이아웃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괜히 외국계 기업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왠지 그럴 듯 하다. 소위 말해 있어보인다.
하지만 라이선스지의 세계에도 계약이라는 문제가 있다.
계약기간 끝나고 재계약하면 다행이지만
질도 별로고, 구독자도 별로 없고, 그래서 광고도 안붙고, 사업이 안된다면
해외사업자가 굳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이걸 계속 할 이유가 없다.
계약기간 끝나면 남이 되는 것이 라이선스지다.
대부분 라이선스지의 질이 상대적으로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부로 어설프게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신생 라이선스지 중에는 외국물 먹고 겉멋만 든 잡지도 많다.
다른 잡지들을 고려할 때 체크하는 사항, 라이선스지에서도 예외없이 세심하고 꼼꼼하게 따져봐라.



한달이 무섭게 새로운 잡지가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 이 업계다.
희생양이 되고싶지 않다면 '을'이 아닌 '갑'의 입장에서 꼼꼼하게 따져보라.

당신이 회사를 고르는 '갑'이다. 
자세를 낮추어 회사에서 골라주길 바라는 생선가게 고등어가 되어선 안된다.
취업사이트에서 흔히 하는 '자신감을 찾으세요!' 따위의 조언이 아니다.
이 과정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일으키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까지 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과 다름이 없다.
'합의 하에 들어와 놓고 딴말한다' 소리 듣는 어린 에디터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좋아서 적은 연봉도 오케이하고 들어왔는데 월급은 밀리고, 준다고는 하는데 언제 줄 지는 모르겠고
정 들어서 그만두지도 못하는 우매한 꼬마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백 퍼센트 에디터를 만들어 주지도 않는 에디터 양성 기관에 몇 백만원씩 퍼붓지 말라는 소리다.
기관의 탓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에디터라는 직업의 수요가 많은데 어찌 다 받아주겠는가. 
그렇다고 변변치 않은 곳에 갈 것도 아니지 않은가.

혹시 엄마카드는 커녕 당장 본인의 생계를 유지해야 할 상황의 학생이라면
지금 당장 다른 업계를 알아봐라. 
그들은 당신의 생계를 책임져 줄 만큼 윤리적일 여유가 없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악순환을 탓 할 뿐이다.



도무지 잡지에 글쓰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블로그를 개설하라.
꾸준히 글을 쓰고 팬층을 늘려 대중의 이목을 끌어라.
동시에 꾸준히 기고할 글을 잡지사에 보내라.
처음부터 욕심부리지말고 교통비 번다 생각하고 작은 곳부터 기고하기 시작해라.
수준은 천천히 높이면 된다.
몇 년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원고청탁을 받는 칼럼니스트가 된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각오해야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사실 그 외부 원고료도 한 두달 정도는 밀리는 일이 다반사다. 
회사 규정상 잡지사 식구들 입에 풀칠하는 게 그 어떤 채권보다도 우선적인 순위에 있다.
회사 식구도 아니고 잠깐 청탁받아 쓴 사람의 원고료를 신경쓸 겨를이 없다.
원고 쓰고 잡지 발행된 후에 잊고 살다보면 어느새 통장에 들어온 보너스 정도로 생각해야 속 편하다.




그러니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마구 지원서를 넣는 것은 채용이 된다 해도 자기 무덤파는 일이 될 수 있다. 
결혼이 미친 짓이 아니라 취직이 미친 짓이 되는 것은 무방비상태에서 골만 넣으려는 넘치는 과욕에서 비롯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수비 잘하는 슈터가 되자.






이번 시즌부터 잘하면 된다.




잡지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십중팔구,
'잡지의 출판과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모르는 게 아니라 아니까 변화가 필요한 거라고 말씀드려본다.


잡지사라고 특별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특권 아닌 특권을 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특권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 선조들이 들으면
무덤에서 일어나 진노할 지배계급의 논리를 정당화 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비단 잡지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산업의 대부분이 이런 악순환의 구조를 가지고도 모른 체 하고 있다.
달리 개선할 방법은 없는데 있어보이는 이 직종에 지원자들의 수요는 늘어만간다.
현실을 알고 도망가는 직원들이 많아져도 더 싸게 채울 인력이 많아 걱정이 없다.
그들의 콧대가 낮아지지 않는 이유다.
질 좋은 콘텐츠나 만들고 콧대 높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이 업계의 문제다.
그러니 제발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자.
높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발 정당한 대우는 받고 일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자.
그렇게 인력난의 폭풍이 한 번 불고나면 '제대로 된 잡지사만 남는다.'는 건 꿈에서나 할 소리고,
아마 자본과 권력을 고루 갖춘 잡지사 위주로 살아남게 될 것이다.
아님 독자들이 꼭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 정의로운 잡지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 업계는 쓸데없는 잡지들로 포화상태다. 
단순히 양이 많은 것을 지탄하는 것이 아니라 질이 별로 좋지도 않은 잡지들이 넘치는 게 문제다.

원래 잡지는 자본주의 구조와 굉장히 친밀하고 닮아있는 매체다.
부정할 수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럼 그렇게 살아남은 몇 안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잡지사에서 
여러분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질 좋은 페이지를 만들면 된다.





언젠가 정말 '재밌는' 기사로 가득한 국산 잡지를 읽는 날이 오기를 바라보며 글을 마친다.